HER2 양성 진단을 받고 나서 처음 들었던 말이 "항암부터 시작해야 합니다"였습니다. 수술을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왜 항암을 먼저 해야 하는지, 어떤 약을 맞는 건지, 솔직히 처음엔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이 글은 저처럼 선행항암을 앞두고 있거나 한창 치료 중인 분들이 조금이라도 덜 혼란스러우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씁니다.

왜 수술 전에 항암을 먼저 하나요 — 선항암의 배경
HER2 양성 유방암에서 종양 크기가 2cm를 초과하거나 림프절 전이가 있는 경우, 수술보다 항암 치료를 먼저 진행하는 것이 표준 치료입니다. 이것을 네오아주반트(Neoadjuvant) 요법, 쉽게 말해 선행항암이라고 부릅니다. 수술 전에 먼저 약물로 암세포를 공격해 크기를 줄이고, 수술 범위를 최소화하는 전략입니다.
저는 2cm가 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선행항암 대상이었습니다. 솔직히 "수술부터 해서 빨리 없애버리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런데 선항암에는 치료 전략적으로 정말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내 암이 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항암 후 수술에서 꺼낸 조직 검사 결과가 이후 치료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가 됩니다.
도세탁셀(docetaxel), 카보플라틴(carboplatin), 트라스투주맙(허셉틴),퍼투주맙(퍼제타) 네 가지 약물을 병용하는 요법입니다. 3주 간격으로 6사이클을 진행하고, 마지막 주사 후 약 3~4주 뒤에 수술하게 되니 첫 항암 시작일로부터 수술까지 대략 5개월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완전관해가 뭐길래 이렇게 중요한 걸까요
TCHP 항암의 최종 목표는 병리학적 완전관해(pCR, Pathological Complete Response)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pCR이란 수술 후 꺼낸 조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봤을 때 유방과 림프절에 살아있는 암세포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허셉틴 단독 선항암을 했을 때 완전관해율이 30~40% 수준이었다면, TCHP를 사용하면 60% 이상, 경우에 따라서는 70% 가까이 보고되기도 합니다(출처: 유럽 암학회 ESMO).
완전관해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치료가 잘 됐다"는 기쁜 소식 때문만이 아닙니다. 5년 장기 추적 연구에서 완전관해에 도달한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재발 위험이 약 46~50%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재발률이 절반 가까이 낮아진다는 건 숫자 이상의 의미입니다.
저는 6사이클을 마치고 완전관해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수술 전까지 종양 크기가 눈에 띄게 줄었고, 더 커지거나 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약물에 반응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결과였습니다. 사실 항암 초반엔 할 만하다 싶었는데, 회차가 쌓일수록 약물이 몸에 누적되면서 체력이 확 떨어졌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던 건 솔직한 후기입니다.
치료 과정에서 알아두면 좋은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항암 당일에는 흉부 엑스레이, 채혈, 심전도 검사를 먼저 진행합니다. 표적치료제인 허셉틴과 퍼제타가 심장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매 회차마다 사전 확인이 필수입니다.
- 주사 시간은 1회차는 약 4시간, 3회차 이후부터는 3시간 내외로 줄어듭니다. 전처치 주사(부작용 완화 목적)를 먼저 맞는데 살짝 졸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 항암 다음 날에는 G-CSF(백혈구 촉진 주사)를 복부에 맞습니다. 여기서 G-CSF란 골수를 자극해 백혈구 생성을 늘려주는 주사로, 항암으로 떨어진 면역 수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필수 처치입니다.
완전관해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수술 후 표적치료제 선택
선행항암을 마치고 수술을 끝내면, 수술 조직 검사 결과에 따라 이후 1년 동안의 아주반트(Adjuvant) 치료 방향이 완전히 갈립니다. 아주반트란 수술 후 잔존할 수 있는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진행하는 보조 치료를 말합니다.
완전관해가 확인된 경우, 림프절 전이가 있었던 고위험군이라면 퍼제타와 허셉틴을 함께 사용합니다. 림프절 전이가 없었다면 허셉틴 단독으로 진행합니다. 수술 후 퍼제타와 허셉틴을 병용했을 때 허셉틴 단독 대비 재발 위험이 최대 28%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로슈 임상 데이터 기반 APHINITY 연구).
완전관해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에는 케사일라(Kadcyla, T-DM1)를 사용합니다. 케사일라는 허셉틴에 DM1이라는 세포독성 항암제를 화학적으로 결합시킨 항체-약물 복합체(ADC, Antibody-Drug Conjugate)입니다. ADC란 표적 항체가 암세포를 정확히 찾아가 결합한 뒤, 내부에서 항암제를 직접 방출하는 방식으로 작용해 정상 세포 손상을 최소화하는 차세대 치료제 개념입니다. 트로이 목마에 비유하면 딱 맞습니다. 케사일라를 사용한 그룹은 허셉틴 단독 그룹보다 재발 위험이 50% 감소하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선행항암이 두렵고 막막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다만 TCHP 치료가 이렇게 많이 쓰이는 건 그만큼 데이터가 탄탄하고, 완전관해율이 높으며, 수술 후 치료 방향을 정하는 데도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HER2 양성이고 2cm를 초과했다면, 선행항암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치료적 이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담당 의료진과 충분히 상의하시면서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모든 치료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사와 상의하여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0B4VfK4Z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