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2 양성 유방암은 전체 유방암의 약 20%를 차지하지만, 진단 당시 이미 크기가 크고 림프절 전이가 동반된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발견했을 때 이미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까지 진행된 상태였고, 치료를 빠르게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공격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전에 비해 치료 선택지가 이렇게 많아졌다는 사실이 조금은 다행으로 느껴졌습니다.

HER2 양성 유방암이 공격적인 이유
HER2란 사람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번(Human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2)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세포 표면에 있는 성장 신호를 받는 안테나 같은 단백질인데, 이것이 정상보다 훨씬 많이 만들어진 상태가 바로 HER2 양성입니다. 수용체가 과다 생성되면 성장 신호가 끊임없이 세포 안으로 전달되어,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암세포가 무한 증식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HER2 양성 유방암은 진행 속도가 빠르고 림프절 전이도 잘 됩니다. 저도 진단을 받았을 때 이미 겨드랑이 림프절 전이가 확인된 상태였습니다. 종양 크기도 크고 기수도 높아서 의료진이 곧바로 치료 일정을 잡을 만큼 상황이 급박했습니다. HER2 유전자 증폭, 즉 유전자 복제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상태가 얼마나 공격적인 암을 만드는지 몸으로 직접 확인한 셈이었습니다.
MD앤더슨 암센터 데이터를 보면 1cm 이하의 작은 HER2 양성 유방암조차 10년 추적 관찰에서 20% 이상 재발한다는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MD앤더슨 암센터). 크기가 작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사이즈보다 분자 아형, 즉 HER2 양성 여부가 예후를 결정하는 데 훨씬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TCHP항암, 4가지 약물이 동시에 들어오는 현실
HER2 양성 유방암에서 종양 크기가 크거나 림프절 전이가 있는 경우, 수술 전 선행항암요법(neoadjuvant chemotherapy)부터 시작합니다. 선행항암이란 수술 전에 먼저 항암치료를 진행해 종양 크기를 줄이고 미세전이를 억제하는 방식입니다. 저도 이 순서대로 진행했고, TCHP 요법을 6회 받은 뒤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TCHP는 네 가지 약물의 머리글자를 딴 요법입니다.
- T: 도세탁셀(Docetaxel) — 탁센 계열 항암제로 탈모, 부종, 말초신경병증을 유발합니다
- C: 카보플라틴(Carboplatin) — 백금 계열 항암제로 골수 억제와 혈소판 감소를 일으킵니다
- H: 트라스투주맙(Trastuzumab, 허셉틴) — HER2 수용체의 도메인 2번에 결합하는 표적 항체입니다
- P: 퍼투주맙(Pertuzumab, 퍼제타) — HER2 수용체의 도메인 4번에 결합해 HER2와 HER3의 다이머리제이션을 차단합니다
여기서 다이머리제이션(dimerization)이란 두 수용체 단백질이 결합해 하나의 복합체를 형성하는 현상으로, 이 과정에서 암세포 내부로 강력한 성장 신호가 전달됩니다. HER2와 HER3가 결합한 헤테로다이머는 HER2끼리 결합한 호모다이머보다 신호 전달 강도가 훨씬 세기 때문에, 퍼제타가 이 결합을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허셉틴 단독으로 항암을 병행했을 때의 완전관해율(pCR)은 30~40% 수준이었는데, 퍼제타를 추가하면서 60%대까지 올라갔습니다. 완전관해율이란 선행항암 후 수술 조직에서 침윤암이 완전히 사라진 비율을 의미합니다. 5명 중 3명의 종양이 치료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수치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과정을 겪어보면, 숫자가 주는 인상과 현실 사이에 꽤 큰 간극이 있습니다. HER2 양성이라고 하면 표적치료제를 쓰니까 비교적 수월할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 생각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고 봅니다. 허셉틴과 퍼제타는 항체 기반 표적약이라 상대적으로 견딜 만한 편이지만, 카보플라틴과 도세탁셀은 전형적인 세포독성 항암제입니다. 탈모, 오심, 골수 억제가 고스란히 따라옵니다. 3주마다 6번, 약 4개월을 이 네 가지 약물과 함께 보내야 합니다.
그나마 열성 호중구 감소증(febrile neutropenia) 예방을 위한 G-CSF 제제가 급여로 지원되면서 과거보다 감염 위험은 줄었습니다. 열성 호중구 감소증이란 항암치료로 백혈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상태에서 고열이 동반되는 응급 상황을 말합니다. 이 부분은 치료 환경이 실질적으로 개선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보플라틴 용량을 기존 AUC6에서 AUC5로 낮춰도 완전관해율이 동일하게 유지되면서 빈혈 부작용이 줄었다는 임상 데이터도 나와 있습니다(출처: 대한유방암학회).
완전관해 이후와 이후가 아닌 경우, 치료 경로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TCHP 6회 후 수술을 하고 나면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완전관해가 확인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입니다.
완전관해가 온 경우에는 이후 허셉틴과 퍼제타, 두 가지 표적약만으로 남은 기간을 유지합니다. 항암제 없이 표적약만으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60%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됩니다.
반면 40%에 해당하는, 수술 후에도 잔존 침윤암이 남아 있는 분들에게는 T-DM1(케사일라, Kadcyla)이 표준 치료로 자리잡았습니다. T-DM1이란 트라스투주맙(허셉틴) 항체에 세포독성 물질인 DM1을 화학적으로 결합시킨 항체-약물 접합체(ADC, Antibody-Drug Conjugate)입니다. 표적 항체가 HER2가 과발현된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달라붙은 뒤 독성 물질을 방출하는 방식이라 일반 항암제보다 정교하게 작용합니다.
KATHERINE 연구에서 7년간 추적한 결과, T-DM1군과 트라스투주맙군 사이에 재발률 차이가 13%포인트에 달했고, 사망률 차이도 약 4.7%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정도면 통계적 의미를 넘어 실제 환자 예후를 바꾸는 수준입니다. 국내에서도 급여가 적용되어 접근성이 높아진 상태입니다(출처: 국립암정보센터).
T-DM1은 허셉틴·퍼제타보다는 독성이 강한 편입니다. 혈소판을 생성하는 거핵세포(megakaryocyte)에 비특이적으로 흡수되면서 혈소판 감소증을 일으키고, 간독성도 주요 부작용으로 꼽힙니다. 제가 직접 경험하면서 느낀 건, 어느 단계에서도 '이제 쉬워지겠다'는 생각이 이르다는 것입니다. 치료의 강도는 달라지지만 주의해야 할 부분은 계속 이어집니다.
앞으로의 방향을 보면 항암제를 완전히 생략하고 표적치료제만으로 완전관해를 달성하는 임상들이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ADAPT, PHERGAIN 같은 연구에서 허셉틴과 퍼제타 두 가지 표적약만으로도 반응이 좋은 환자군에서 완전관해를 얻었고, 그 생존율도 양호했습니다. 10년 안쪽으로 임상 현장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HER2 양성 유방암은 진단 자체가 두려운 상황이지만, 치료 선택지가 이만큼 쌓인 암은 많지 않습니다. FDA 승인을 받은 HER2 표적치료제만 현재 8개입니다. 치료 과정이 여전히 힘든 것은 사실이고, 저 역시 그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불안해하는 시간보다, 의료진의 치료 계획에 맞춰 컨디션을 지키고 다음 단계를 잘 완주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지만, 치료할 수 있는 무기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두려움을 조금씩 밀어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치료 방침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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